인물

병원에서 만난 희망의 은하철도 999

어울령 2010. 8. 17. 09:31

 

무서운 곳이라고 해도 몸이 아프면 반드시 가야할 곳이 병원이었다. 씩씩하던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무렵 까닭도 없이 시름시름 앓았다. 감기인 것 같았으나 감기약을 먹어도 낫지 않았다. 채한 것 같아 채 내리는 집에 갔으나 먹지도 않은 닭고기를 목안에서 꺼내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며칠을 앓고 있는 나를 어머니가 이끌었다. 병원을 가자는 것이었는데 나는 그만 무서워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다. 그때 어머니가 내게 해준 말이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으면 바나나를 사준다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과일 중에서도 가장 싼 과일이 되었지만 그때 돈으로 한 개에 오백 원짜리 바나나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음식이었다. 그런 것을 먹을 수 있다니······. 나는 그 미지의 맛에 흠뻑 빠져들었다. 바나나 바나나 바나나 바나나, 그렇게 말하며 그야말로 씩씩하게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섰다.
주사를 맞고 바나나를 먹어도 그러나 내 병은 좀처럼 낫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겨울, 몸이 아파 조퇴하고 홀로 돌아오는 길에서 나는 그만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떠보니 어느 커다란 병원이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 선생님 옆에선 어머니가 괜찮냐고 물었다. 그때 나는 왜 그렇게 눈물이 나왔을까.
신우염이라고 했다. 감기와 배탈 정도의 병만 알아왔던 내게 그리고 어머니에게 그 병은 생소하기만 했다. 어쩌면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다행히 수술을 하지 않았다. 대신 몇 달을 입원해야 했다. 당연히 어린 나는 소아과에 입원했다. 당연하지 않은 것은 내가 입원한 소아병동에 떡하니 입원을 해 있던 어느 할아버지였다. 당연하거나 말거나 내 침대 바로 옆 침대를 쓰는 할아버지와 나는 금세 친해졌다.
신우염인 내게 짜고 매운 음식은 절대 피해야할 음식이었다. 하지만 나는 떡볶이나 뭐 그런 매운 것이 먹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김치도 마음껏 먹지 못하는 상황. 어머니가 물에 씻어준 무말랭이 같은 반찬이 겨우 내가 맛 볼 수 있는 짠 음식들이었다.

나는 자주 숟가락을 놓은 일이 많아졌는데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어머니와 간호사 몰래 내게 과자를 사주곤 했다. 그러면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병원 옥상에 올라가 담배 피우는 할아버지를 위해 누가 오는지 안 오는지 망을 봐주곤 했다. 그렇게 아삼륙으로 붙어 다니던 어느 날 할아버지는 아들이 온다며 내게 소개를 시켜준다고 했다.
“은하철도 999있지, 그거 노래 부르는 이가 바로 우리 막내아들이다.”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 우주 정거장에 햇빛이 쏟아지네······. 그때 은하철도 999는 너무도 유명해서 그 노래를 모르는 또래 아이들이 없었다. 그런 노래를 부른 사람을 볼 수 있다는 상상은 그 자체만으로 행복한 것이었다. 어쩌면 그 상상이 커서 할아버지의 말을 믿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에이, 거짓말. 그거 진짜 유명한데 할아버지 아들이 불렀다고요?”
“그럼, 인석아. 왜 내가 너한테 거짓말을 해. 이따 오면 노래 불러달라고 할게. 대신, 옥상에서 알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나는 이제나 저제나 할아버지의 아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힘차게 달려라 은하철도 999 힘차게 달려라 은하철도 999. 기다리는 동안 함께 있던 병실 아이들과 함께 우리는 은하철도 999를 몇 번이나 불렀다. 그리고 마침내 기다리던 할아버지의 아들이 왔을 때 나는 염치도 없이 쪼르르 달려갔다. 할아버지가 나를 소개할 옴나위도 없이 나는 노래를 불러달라고 졸랐다. 내 뒤에는 이미 소아병동의 많은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어쩔 줄을 몰라 하던 아저씨가 마침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기차가 어둠을 해치고······.
빵, 빵, 빠앙. 긴 어둠을 뚫는 기적 소리가 내 귓속으로 날아들었다. 힘차게 달려라 은하철도 999. 그곳에서부터 병실에 모여든 아이들 모두가 노래를 따라 불렀다.

몸이 아픈 아이들에게 그러나 그것은 노래가 아니었다. 혹은 꿈이거나 혹은 희망이었다. 노래를 부르는 사이 아픈 몸이 나은 우리들은 은하철도를 타고 저 먼 우주로 날아다녔다. 덕분에 나는 오래지 않아 건강한 몸으로 퇴원을 했다. 그리고 아주 오래 지나 그때 노래를 불러주던 김국환이 ‘타타타’라는 노래를 들고 나왔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다. 아주 잠깐 가슴이 아렸다.
그리고 또 오래 지나 병원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신우염에 걸린 어린 나를 떠올려본다. 어느 새 나는 은하철도를 타고 햇살 쏟아지던 병원의 옥상에 도착했다.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한 할아버지가 어른이 된 나를 반겨준다. 세월의 아픔들이 햇살 아래서 말끔히 녹아내리는 기분이다.

글을 쓴 조헌용은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소설가입니다. 삶의 흔적이 오롯이 담겨 있는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하는 그는
『파도는 잠들지 않는다』 『청소년 평전 대륙의 붉은 별 마오쩌둥』 등의 책을 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