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4학년
동문노타리에서 지금의
교육대학교 맞은편으로 이사해 왔다
잘은 모르지만
농장 관리인이 농장에 중요한것들을
팔아 도주했기도 하였지만
아버지가 회사를 그만 두셨다
농장에 머무르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이사였다
집도 준비되지 않아
농장 창고를 손질하여 방 두개 마루 밖으로난 부엌
수도가 없었는데 지게지고 물을 길러야 했다
아버지가 근무하시던 선일건재사는 당시
제주에선 꽤나 큰 회사였다
아버지의 성품을 아시는 사장님은
회사의 모든 것을 맡기셨다
사택이 안에 있어서
안으로 들어가는 모든것도
아버지몫이였다
사장님형제들과 사모는 맘대로 할 수없게 되자
어느날 공모해서 모함했다
배신감느낀 사장님의 부아로 따귀를 맞는 수모를
엄마가 우연히 보시곤
그 앞에서 "내 남편에게 손찌검 하시다니 당신들은 내 남편 둘 자격없다"하시곤
그 날로 사표 쓰시게 하셨다
우리가 농장으로 이주한 이유였다
호롱불에서 밥도 먹고 책도 읽어야 했지만
우린 마냥 즐거웠다
온 들녘이 우리들 세상이었다
농장은 정리한다고 바쁘게 돌아가도
우린 패거리를 만들어 그 일대를 접수했다
남편은 간혹 내 손과 발을 보면서 얘기한다
손과 발을 보면 무척 키큰사람이라 착각한다고...
아마 물지게 땜에 키가 안컸나봐라고 한다
아무렴 초등 4학년이 얼마나 물지게 졌을라구...
여름이 지나갈 무렵 저녁에
다들 평상에 앉아 있는데
무엇땜에 부엌에 갔는지 모르겠다
슬리퍼신고 들어갔는데
뭔가 쒜엑하고 발가락을 물었다
부엌에서 뛰어나오며 소리질렀다
"엄마! 뭔가 발가락 물었어!"
아버지랑 엄마가 불을 들고 부엌에가 살펴보니
독사였단다
즉시로 고무줄로
발목 무릎위 넓적다리 세군데로 나눠 묶고선
병원으로...
상상도 하기싫은 밤이었다
마취제가 없어 그냥 수술시작
발가락을 메스로 찢을 땐 그런대로 견딜만 했지만
바늘로 꼬맬땐 건물이 무너지는 듯한 괴성지르다
더는 할 수 없어 지혈로 마무리 했던날
우리 큰언니가 근무하던 병원이였다
의사샘 말씀 "살아있는것이 다행이야
응급처치가 잘되었기에 망정이지
꼬맹아! 이건 아픈것도 아니다"
그 날 엄마는 맘이 너무아파서 밖에나가 한없이 우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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