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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의 곤충기’ 책을 들여다 보면, 호기심이 가득한 눈 하나가 참으로 우직하게도 말똥을 굴리는 말똥구리를 들여다보고 있는 삽화가 보인다. 이 곤충은 왜 뒷발로 말똥을 굴리는 것일까, 저 냄새나는 말똥은 왜 굴려가는 것일까, 그런 궁금증들은 다시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리고 독자들의 관심도 물려 들어간다. 곤충기라고 하지만 결코 딱딱하지 않은 재미난 문체, 작은 곤충을 통해 세상을 넓게 보도록 하는 힘이 바로 파블로의 곤충기가 가진 매력이다. 그래서일까, 누구나 한 번쯤 곤충박사를 꿈꿨을 것이다.
조백기 교수도 곤충기를 읽으며 그런 꿈을 꾸었을까. 그는 평생을 해충과 곰팡이를 연구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왜 하필 우리 몸에 해로운 벌레를 연구할까?
조백기 교수는 37년이란 세월 저편의 아직 젊은 자신을 떠올린다. 전공의 때인 1970년대 조백기 교수는 초에 옴 환자가 참 많았다. 그런 옴 환자를 보면서 옴을 일으키는 옴 진드기에 가장 먼저 관심이 갔다. 다른 동료들이 치료에만 정신이 없을 때 그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고 싶어 마음이 분주했다.
"옴을 일으키는 진드기의 형태나 검사법에 대한 문헌이 많지 않더군요.
원인을 알아야 병을 치료할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후 조백기 교수는 본격적으로 해충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해로운 것의 습성과 분포를 알아야만 우리 인간이 이롭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결과 그는 ‘한국의 집먼지진드기의 분류와 분포’라는 박사논문을 통해 아토피나 천식의 중요 원인으로 알려진 집먼지 진드기가 우리나라의 집먼지 속에서도 흔히 발견된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렸다.
그쯤에서 멈출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직 우리 곁을 함께 살아가는 수많은 해충들이 있기 때문에 조백기 교수는 연구를 멈출 수 없었다. 이런 조백기 교수의 노력은 고스란히 책으로 담겨져 2004년 문화관광부 우수도서 선정과 2009년 대한민국학술원 선정 우수도서라는 결실을 맺기에 이른다. 두 권의 책 모두 해충을 다른 것으로 각각『진드기에 의한 피부질환』과『유해동물에 의한 피부질환』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사실 의사가 자신의 연구 결과를 묶은 책이 우수 도서에 선정되기는 매우 이례적이다. 또한 최근에 발간한 『손발톱질환』까지 문화관광체육부 우수 도서에 선정되었다고 하니, 조백기 교수의 연구가 인류를 이롭게 하고 있음은 충분히 증명된 셈이다.
다시 파블로 곤충기의 이야기를 빌어보자. 말똥구리는 참 힘들게도 말똥을 굴려간다. 말똥은 말똥구리의 먹이가 된다. 더럽다고 하지만 말똥구리의 노력 때문에 지구는 깨끗해진다. 이런 면에서 감히 조백기 교수도 말똥구리를 닮았다고 말하고 싶다. 남들은 꺼리기 쉬운 진드기를 연구하고자 많은 희생과 인내를 감수해왔다. 그런 작은 해충들이 큰 병을 일으킴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국내에는 이런 자료들을 정리해 놓은 전문서적이 전무한 실정이다. 진드기와 독나방, 개미, 먹파리, 이, 딱정벌레 등의 곤충 그리고 다양한 장내 기생충에 의한 피부질환들을 경험하면서 모은 자료들을 조백기 교수는 정성을 담아 기록으로 남겼고, 그 자료들은 이제 후배 의사들의 손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을 이롭게 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업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조백기 교수는 여전히 연구 계획과 집필 계획을 들려준다.
"지난 10년간 <손발톱크리닉>을 열면서 많은 다양한 손발톱질환을 접했습니다. 이제 정년까지 남은 2년 동안 더 많은 임상자료를 모으고 정리해서 네 번째 저서인『증례로 본 손발톱질환』을 출간하기 위해 집필 중입니다."
정년까지 앞으로 2년. 그 시간까지 연구를 위해 살고 싶다는 조백기 교수. 피부질환을 일으키는 해충의 종류는 다양한데 관심을 갖고 있는 피부과 의사는 거의 없는 것이 마냥 안타까워 연구를 시작했으나 아직도 밝혀내지 못한 바가 너무 많아 연구를 멈춘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란다.
우리를 괴롭히는 곤충으로부터 우리의 피부와 건강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조백기 교수는 거두절미하고 그것들로부터 멀어지라고 말한다.
"우리를 가장 많이 괴롭히는 것은 모기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등에모기나 먹파리도 우리의 피를 빨아먹고는 하지요. 이와 같은 작은 곤충은 방충망을 이용하거나 기피제를 발라 피하는 것이 피부를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어쩌면 당연한 얘기 같지만 생각해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해충을 피하기는 게을리 하면서 해충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후에야 해충을 탓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조백기 교수의 입장에서라면 정말 꼭 들려주고 싶으신 조언일 것 같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해충으로부터 해를 입게 됐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조백기 교수는 야외활동 중 벌에 쏘였을 때 쏘인 부위에서 독침이 보이면 칼끝이나 신용카드 같은 것으로 옆으로 밀어 제거하고 얼음 등으로 환부를 차게 하면 가려움증이나 통증을 완화시킬 수 있고 전한다. 그러나 땅벌이나 말벌은 독침을 다시 사용하기 때문에 쏘인 부분에서 독침을 찾을 수는 없지만, 꿀벌에 쏘였을 때보다 더 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E따라서 벌에 쏘인 후 심한 아나필락시스(혈압강하, 호흡곤란 등 동반) 병력이 있는 사람은 등산, 성묘 등의 야외활동은 혼자 다니지 말고 최소 2명 이상이 함께 다니는 것이 좋다고 한다. 아울러 무엇보다도 벌집을 건드리지 말아야하며 향수나 밝은 색의 옷은 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아울러 주택에서 종종 발견되는 개미 중에는 몸통 끝 부분에 독침이 있는 침개미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왕침개미에 쏘여 아나필락시스 반응을 일으키는 예가 많이 보고되고 있기 때문에, 집안이나 집주위에서 이런 개미가 발견되면 관리실이나 동사무소에 알리고 살충제를 뿌려 제거하여야 한다고 한다. 또한 등산할 때 모자를 쓰거나 되도록 맨살 노출을 피하는 것은 참진드기의 공격을 피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조백기 교수는 조언한다.
우리 주위에는 여전히 많은 해충과 곰팡이들이 있다. 때때로 이것들은 피부염을 일으키거나 전염병을 불러온다. 그러나 이제 마음 한편으로는 안심을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해로운 곤충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길을 찾아 노력하는 조백기 교수와 같은 선구자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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