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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아마도 어디선가 한 번 쯤은 들어 본 구절일 것입니다. 유치환님의 “행복” 이라는 시의 한 구절입니다. 사람은 일생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그 받은 사랑만큼 다른 사람과 함께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지금 제가 있는 곳은 어쩌면 낯설고 이름마저도 생소한 나라의 한 지방 변두리 조그만 도시인 페루의 삐우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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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곳 페루의 수도인 리마에서 버스로 14시간 정도 떨어진 ‘삐우라’라는 조그만 도시에서 한국- 페루 우정 병원 이비인후과 의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5년 전쯤 부천 가톨릭대학교 성가병원에서 이비인후과 레지던트로 근무를 하고 있을 때 한 환자가 외래 진료실로 찾아왔습니다. 한 눈에 보기에도 남루한 차림의 외국인 노동자... 귀에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고 당연히 의료보험증도 없었습니다. 그 환자를 통해서 부천 사회복지센터에서 매주 일요일 열리는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의료모임’을 알게 되었고 그곳에서 진료를 하게 되었습니다.
동남아시아, 중국, 몽골, 저 멀리 남미에서 온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열악하게 생활을 하며 한 푼 두 푼 돈을 모아 고국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페루 친구와 친하게 되었고 그 친구를 통해서 저는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사랑, 그들의 희망이 어쩌면 우리나라를 살찌웠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참 많이도 부끄러웠습니다. 또한 페루에도 한국인 의사가 진료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처음 국제협력단(KOICA)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전문의 시험을 합격하고 다른 진로에 별로 고민하지 않고 국제협력의사로 페루에 지원해 지금 2년 넘게 이 곳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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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곳에서 하는 일은 인구 50만 명 정도가 사는 삐우라 시의 유일한 이비인후과 의사로서 이비인후과 진료와 수술을 하는 것입니다.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 부족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내과,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지방 중소 도시까지 이비인후과 시설은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물론 이 곳에도 만성중이염, 부비동염 등의 만성질환부터 외이도에 질환이 생긴 분이나 동전을 삼킨 아이까지 여러 이비인후과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많지만 이비인후과 의사가 없어서 버스를 타고 14시간을 리마(페루의 수도)까지 나가거나 그나마 버스비가 없으면 마냥 기다리거나 하늘의 뜻에 맡기고 말며 살아들 왔었습니다.
제가 이곳에 온 2년 동안 대부분 오전에는 외래에서 이비인후과 진료를 보고 오후에는 수술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말도 안 통하는 한국인 의사가 와서 진료를 본다는 호기심에 한 명 두 명 오던 환자들이 이제는 삐우라뿐만 아니라 삐우라 인근 주변 도시에서도 환자들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경계를 보이던 페루 의사들도 이제는 친구가 되어서 서로 환자에 대해서 상의하며 진료를 하고 있습니다.
2년 전 지구 반대편 먼 나라로 가는 저에게 가족과 친구 그리고 선생님들이 말도 안 통하는 이국땅에서 고생할 거라고 걱정해 주셨지만, 이곳에서 사는 동안에 한국보다 조금은 더 느긋한 모습과 상대방을 따듯하게 배려하는 모습에 항상 감사함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진료실에서 환자들과 스페인어로 농담도 하고 환자에게 가슴 따듯한 위로도 하는 제 자신을 보면 시간의 흐름을 느끼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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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곳에 올 때는 ‘봉사자’ 라는 생각으로 내가 어떻게 이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까 생각하고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생각들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 보면 내가 이 사람들을 도운 시간 보다는 내가 이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은 시간들이 훨씬 많았음을 느끼게 됩니다. 쌀을 사고 세금을 내고 집을 구하고 모든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을 이 곳 친구들에게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봉사란 주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나는 이 사람들에게 아플 때 치료를 해 주고 조언을 해주고 수술을 해주지만 이 사람들은 나에게 따듯한 웃음과 진심어린 존경과 애정 어린 미소를 나눕니다. 이렇게 이곳에서 이들에게 받은 사랑은 제가 준 도움에 비하면 얼마나 큰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어떤 친구들은 페루에 있는 제 모습을 보고 대단하다고 어떻게 그런 나라까지 가서 그런 일을 할 수 가 있냐고 말하지만 실제 여기서 제 모습은 봉사가 아니고 생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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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수녀님의 말씀처럼 봉사는 옆에 있는 사람의 손을 따듯하게 잡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합니다. 제가 잡고 있는 아직은 가난하지만 따듯한 마음의 페루 사람들의 손. 저 또한 페루 사람들이 제 손을 잡아 주는 것에 감사하며 오늘도 열심히 생활하고 있습니다.
사랑을 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한 것 같습니다. 주는 것보다 몇 백배나 더 많이 돌려받을 수 있으니 훨씬 더 행복한 것 같습니다. 저에게 이렇게 큰 사랑을 알게 해준 성가병원 여러분, 그리고 한국에서 오늘을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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