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당신은 눈이 멀었다. 당신 뿐 아니다. 당신이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들도, 당신과 함께 웃고 울던 회사 동료들도 눈이 멀었다.
그 무서운 현실 속에서 당신은 어떤 공포를 느낄 것인가?
무섭고 슬프고 억울하고 분노하고······ 그리고 마침내 절망할 것이다. 얼마 전 국내에서 개봉해 흥행에 성공한 바 있는 <눈먼자들의 도시>는 우리의 오감 가운데 가장 소중한 시각에 대한 이야기다. ‘눈이 멀어버린다면’이라는 상상력은 다시 역으로 모든 사람이 다 눈이 멀었는데 나 혼자서만 눈이 멀지 않았다면 으로 이어진다. 이런 영화적 상상력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주제 사라마구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소설에서 시작했다.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는 사라마구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인 것이다.
영화 속 줄거리는 끔직하고 잔인하다. 정체불명의 실명 바이러스가 도시를 뒤덮고 눈 먼 자들이 정부에 의해 감금, 격리되면서 벌어진다. 그리고 그 속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존재한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실명바이러스는 순식간에 퍼지고 도시는 폐허로 만든다. 경찰관, 아이, 노인이 시력을 잃기 시작한다. 보이지 않는 눈 때문에 안과의사를 찾은 남자도, 그 남자를 치료한 의사도 모두 시력을 잃는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 등장하는 실명 바이러스는 이처럼 무시무시하기만 하다. 닿기만 해도 전염되고, 잠복기도 불과 하루일뿐이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이 바이러스에감염되기까지 한다. 바이러스 환자들을 격리하는 것은 그러므로 매우 당연해보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서 다른 이들을 격리 수용한다는 그 자체는 끔찍한 결말로 치닫는다. 주인공인 쥴리안 무어는 그런 끔찍한 결말 속으로 스스로 뛰어든 인물, 쥴리안 무어는 모든 사람들이 실명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때 유일하게 감염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 스스로 눈먼 자들의 도시 속에 감금되는 것이다. 영화는 이처럼 인간의 감각 가운데 가장 중요한 시각을 파고든다. 보인다는 것, 볼 수 있다는 것은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기쁨,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보인다는 사실에 대해서 아주 당연하게 생각한다.
만일 현실에서 영화와 같은 바이러스가 존재한다면 어떤 상황이 발생할까? 상상 그 자체만으로 결코 유쾌하지 않는 일이다. 영화에서 보다 더욱 끔찍한 일이 발생하지나 않을까? 그래서일까, 영화의 상상력과 같은 바이러스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는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할 것 같은, 정말이지 영화 같은 이런 이야기들인 것이다.
현실에서 가장 심각했던 눈병은 아폴로 눈병이었다. 엔테로바이러스에 의해 전염되는 이 눈병은 접촉을 통해 전염되는 안과적으로 가장 전염력이 강한 바이러스성 눈병이었다. 또 하나의 무서운 눈병은 유행성각결막염을 유발하는 아데노바이러스이다.
다행스럽게도 이 두 질병 역시 실명에 가까운 심각한 정도의 시력저하를 일으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심한 충혈이나 눈물 흘림 이물감을 일으키다가 호전되는 질환인 것이다.
빠르게 시력저하를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바이러스성 질환은 ‘급성망막괴사’이다. ‘급성망막괴사’는 헤르페스 바이러스에 의한 것으로 생각되는 질환인데 빠르게 시력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질환이긴 하지만 전염성이 있지는 않다. 그러나 헤르페스바이러스는 급성망막괴사라는 질환 외에도 헤르페스 각막염 등을 유발하여 심한 시력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
만일,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와 헤르페스바이러스가 재조합되어 현실 세계에서 발생한다면 그 것이 실명 바이러스라고 이름 붙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에이즈환자처럼 심하게 면역이 약해진 상태에서의 바이러스 감염이 아니라면 바이러스로 인해 실명에 이를 정도로 치명적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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