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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의 직장 생활은 참으로 긴 시간들이었습니다. 쳇바퀴를 돌듯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 속에서 살아왔던 날들이었지요. 무엇인가 꿈과 재미를 위해 살고 싶었지만 이런저런 사정들이 그런 제 욕심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봉사활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사랑을 나눠야한다는 사실을 배웠지만 막상 봉사를 실천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언제가 정년이 되어 퇴직을 한다면 ‘나도 봉사나 하면서 살아야지...’ 그런 막연한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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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훌쩍 지나버린 세월들. 34년간의 직장생활을 끝내고 이제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살다가 내 인생을 끝맺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당의 주보를 보다가 ‘내가 해야 하는 봉사활동이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호스피스 자원봉사. 사실 호스피스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기는 했지만 왠지 관심이 쏠려 결심을 하였습니다.
호스피스 자원봉사 활동을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했습니다. 그저 나누고 실천하면 될 것이라고 쉽게 생각했었는데, 교육을 받으며 ‘아.. 이런 것이구나...’하며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었습니다. 그렇게 조금은 서투르고 모자라게 시작한 호스피스 자원봉사가 어느덧 3년째로 접어들었네요.
사랑을 나누는 것, 그것이 봉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3년이 지나고 보니 내가 했던 것은 사실 봉사자라기보다는 오히려 호스피스 환자분들로부터 새로운 인생을 보고 듣고 배웠던 시간들이었습니다. 병원은 그렇게 또 다른 인생을 제게 안겨준 셈이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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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 자원봉사를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죽음이 나와는 아주 먼 곳에 있을 것이라고 늘 생각해왔었습니다. 그러나 환자들과 지내면서 죽음이란 내 삶과 똑같이 내 옆에 항상 동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남녀노소, 지위고하, 빈부의 차이 등에는 아무런 관계없이 죽음은 언제나 우리 바로 곁에 있다는 것을 많은 분들의 경우를 통해 알게 되었죠. 그렇게 생각하니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되더라구요. 오늘 하루를 이렇게 살아가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도 알게 되었고요.
어느 신부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종교란 죽음을 잘 준비하는 법을 배우는 곳이라고요. 사제들의 수단(앞 단추가 많이 달린 치마같이 긴 옷)과 수도자들의 옷이 대부분 검정색인 까닭이 바로 모두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래서인지 신앙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의 임종에서 때로는 편안하게 주님께 귀의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때마다 나도 과연 저들처럼 순명하며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오늘 하루를 또 알차게 살아간다면 나도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지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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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라는 것이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그런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같이 봉사하는 분들이 많이 있지요. 그렇게 같이 봉사하시는 형제자매들의 마음이 너무나 순수하고 헌신적이기에 새삼 놀랄 때가 많습니다. 특히, 젊은 자매님들은 성당봉사, 자녀교육, 각종 집안일, 건강관리 등만 해도 하루해가 모자랄 터인데 빠짐없이 호스피스 봉사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 감동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그들을 볼 때마다 역시 사랑은 받을 때가 아니라 베풀 때 더욱 행복하다는 성경 말씀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앞으로 내가 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될지는 알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나와 우리 봉사자들의 자그마한 정성이 호스피스 환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커다란 위로와 기쁨이 되기를 언제나 희망합니다. 또 그들에게 성가정의 은총이 충만하기를 우리 주 하느님께 간절히 빌어봅니다.
못난 사람이 감히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주신 하느님께 더 큰 사랑으로 세상을 살아가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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