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명사의 식탁

어울령 2010. 5. 4. 15:16
 

세계를 놀라게한 한국인

어린이 날인 5월 5일, 산악인 엄홍길 씨는 히말라야 4200m의 높은 오지 팡보체 마을에서 ‘팡보체 휴먼스쿨’ 초등학교 준공식을 엽니다. 이제는 ‘인생이라는 산’에 도전해보고 싶다던 세계적인 엄홍길 씨는 이를 시작으로 네팔 히말라야의 깊은 오지에 16개의 학교를 열고 의료봉사를 실시하는 계획을 하나 하나 실행해 나가려 합니다. 산(山)에서 배운 깊은 사랑에 대해 이제는 구체적으로 보답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그가 새롭게 오르고자 하는 ‘사랑의 봉우리’까지 가는 길에는 많은 동반자들이 따릅니다.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도 대표적인 동반자입니다. 준공식을 위한 이번의 네팔 행에는 서울성모병원 외과 김승남 교수와 조은영 간호사가 함께 해 의료시설이 열악한 마을 주민을 위해 사랑의 의료봉사를 펼칠 예정입니다.

 

                                                      

세계로 퍼진 사랑의 의학

지난 2009년 말, 서울성모병원은 엄홍길 씨가 이끌고 있는 엄홍길 휴먼재단의 도움으로 입국한 네팔인 18살 밍마참지 양을 무료로 수술했습니다. 팡보체 마을에 살고 있는 밍마참지 양은 10살 무렵 언덕 아래로 떨어져 왼쪽 엉덩이 부위가 골절되는 사고를 당했으나,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제대로 걸을 수 없는 장애를 안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휴먼재단과 서울성모병원의 도움으로 밍마참지 양은 건강해졌고, 네팔로 돌아가 팡보체 초등학교가 건립되면 양호교사로 일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팡보체 마을에 들어선 사랑의 학교와 그 품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을 밍마참지 양의 밝은 웃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우리도 또한 흐뭇한 웃음을 짓게 됩니다.

 

힘이 되는 한국인의 밥상

엄홍길 씨는 히말라야 등반 때마다 한국 음식들을 공수해 가서 먹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등만 중에야 물만 부으면 먹을 수 있는 간편한 음식을 먹었지만, 베이스캠프에서는 거의 한국에서 먹는 것과 같은 음식을 고수했다고 합니다. 돼지고기, 닭고기 등도 많이 먹었지만, 특히 생선을 좋아해 간고등어, 홍어 등까지 챙겨 다녔다고 하고, 현지에서 야크(양과 비슷하게 생긴 소과의 동물), 염소, 양 고기 등을 먹을 기회가 있을 때도 한국식으로 간장, 된장, 고추장 등으로 간을 해 먹었다고 합니다. 엄홍길 씨의 체력의 바탕에는 바로 ‘한국식’이 있었던 것이죠.

그러나 타지에서 가장 ‘그리운 음식’이었던 것은 어쩌면 ‘묵은지’일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묵은지 얘기하니 침이 확 나오네요” 하며 이야기를 하는 도중 엄홍길 씨가 군침을 삼키십니다. 생각만으로도 맛있을 것 같은 음식, 묵은지. 눈 덮인 히말라야에서 묵은지 한 조각을 입에 넣는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지 감히 상상이 잘 안가기도 합니다.

묵은지라고 하면 신김치와 같다고 생각하거나 김장김치를 오래 묵혀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묵은지는 겨울 김장철에 김치를 담가 겨울동안 적정온도에 보관했다가 자연 숙성 발효시킨 뒤 초여름이 시작되면서 깊은 맛이 우러나게 된 토속김치를 말합니다.
신김치가 숙성이 빨리 돼 신맛이 나는 반면, 묵은지는 서서히 오랜 기간 숙성해 시지 않고 깊은 맛을 내는 최고의 발효식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숙성기간 중에 딱 하루만 보관 온도가 높아진다거나 바람이 든다거나 그런 작은 차이로 맛이 확 달라지기도 하는 것이 묵은지입니다. 정말 맛있는 묵은지를 찾기 어려운 것이 바로 그 때문입니다.

묵은지의 효능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조사된 바는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김치가 세계보건기구(WTO)가 선정한 세계5대 건강식품 중 하나라는 것을 생각할 때, 묵은지에는 항암효과와 항산화 작용, 면역 증진효과, 순환기 개선효과가 있다고 추정됩니다.

한국식 밥상과 묵은지가 엄홍길 씨에게 힘이 되었듯, 우리에게 어려움을 극복하고 용기를 가질 수 있게 해준 산악인 엄홍길 씨. 엄홍길 씨와 그의 동반자들이 새롭게 향해 오르고 있는 ‘사랑의 봉우리’는 그 정상이 너무 높아 어딘지 보이지는 않는 것 같지만, 가는 길 굽이굽이마다 더 큰 기적과 사랑의 역사가 펼쳐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글 자유기고가 조헌용

감수 카톨릭의과대학 부천성모병원 영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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