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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의과대학 성모자애병원 박용수 교수, 그는 귀의 소중함을 누구 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가 연구하고 치료하는 ‘귀’는 일반의 귀와는 조금 다른 것처럼 보인다. 박용수 교수는 현재 안면마비 치료를 위한 ‘귀’연구에 한참이라고 했다.
‘안면마비와 귀’. 얼핏 들으면 이 둘은 큰 연관은 없을 것처럼 들린다. 안면마비를 가져오는 원인은 근육과 연결된 신경이거나 뇌 이상이 아닐까? 그런 의문을 박용수 교수는 명쾌하게 해결해 준다.
“우리 얼굴 신경을 조절하는 곳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뇌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할 것이 하나 있어요. 뇌에서 나온 신경이 귀를 거친 뒤에 얼굴로 나온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정상적인 통로 역할을 하는 귀가 아프면 당연히 안면 마비가 발생하는 것이지요. 귀는 이처럼 단순히 듣는 역할에 그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몸의 평행을 유지하기도 하는 등 많은 일을 하지요.”
그제야 안면마비 치료에 대한 연구가 이비인후과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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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수 교수가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길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하얀 가운을 입고 환자들을 치료하는 아버지를 보고 자랐다. 아픈 사람들의 가슴에 가만히 청진기를 대고 진찰하는 아버지를 보며 자란 어린 아이는 세상의 모든 아픔을 치료하는 의사를 꿈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내과가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내과는 의학이 발달해서 정밀 진찰이 가능하지만 내가 의사를 선택한 30년 전에는 사실 그런 것들이 미흡했어요.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경험, 그리고 환자의 상태에 따라서 처방을 많이 했던 때였지요. |
나는 그런 것 보다는 보다 실질적이고 확실한 아픔을 치료하고 싶었어요. 외과를 선택하면서 아버지와는 다른 방식을 의학을 펼치기 시작했던 거였지요.”
아버지의 별이 아들의 가슴으로 옮아와 더 큰 희망으로 자랐던 것이다. 그 꿈의 끝은 어디일까? 박용수 교수는 물론 자신의 꿈이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질병 없이 행복한 사회, 그것은 누구나 꿈꾸는 사회이지만 사실 아주 먼 미래의 일일뿐이다. 그래서 박용수 교수가 오늘의 현실에서 선택한 진료과가 바로 이비인후과이다. 외과 가운데서는 조금 소박하고 꼼꼼한 곳이기도 하다.
“중고등학교 때 내가 코가 참 많이도 안 좋았어. 그래서 내 병을 먼저 치료하고 관심을 갖다보니까 이비인후과를 선택했어요. 물론 지금은 이비인후과에서도 귀쪽을 전공으로 선택했지만요.”
조용조용 말하는 박용수 교수의 모습을 통해서 어쩐지 이비인후과는 그에게 아주 잘 맞는 옷처럼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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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로 듣는 소리는 참으로 많다. 그러나 귀는 단순히 소리만 듣는 기관이 아니다. 평행을 유지하기도 하고 안면으로 가는 신경의 통로이기도 하다. 귀가 소중한 것은 바로 거기에 있다. 귀가 아프면 우리 몸은 균형을 잃게 된다. 흔들리는 삶이란 얼마나 위태로운가. 귀가 아프면 안면에 마비가 올 수 있다. 찡그린 얼굴로 살아가는 일이란 또 얼마나 슬픈 일인가.
박용수 교수는 귀의 소중함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중이염 수술을 하고 안면과 연결되어 있는 신경을 치료하며 그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귀를 소홀히 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다 그렇겠지만 귀를 소홀하게 생각해서 치료시기를 놓치는 사람들이 많아요. 조금만 일찍 찾아왔더라면 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어쩔 수 없이 드네요.”
그가 지난 날 시기를 놓쳐 영영 귀의 기능을 잃어버리거나 기능 회복을 위해 오랫동안 고생을 하고 있는 환자들을 잠시 떠올린 것일까? 얼굴에 안타까운 빛이 순간 스쳤다. 그리고 그런 아쉬움과 안타까움은 지금 박용수 교수에게 그 어떤 이비인후과 의사들 보다 더 많은 일을 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잘 들리는 세상’ 그리고 ‘밝은 표정이 가득한 세상’을 꿈꾸는 박용수 교수를 만나고 나니 귀에 대한 소중함을 한층 더 깨닫게 된다. 작은 소리와 표정이 전해주는 행복함을 모두가 누릴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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