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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식탁

어울령 2010. 7. 9.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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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순재의 떡국과 영조대왕의 탕평채

<허준>의 유의태, <이산>의 영조대왕, <베토벤 바이러스>의 치매 노인, <거침없이 하이킥>의 야동 순재 등 장르와 형식을 뛰어넘으며 다양한 역할을 보여 주고 있는 원로 배우 이순재 씨. 그런 이순재 씨의 새해 식탁에는 어떤 음식이 오를까요? <명사의 식탁>에서는 새해를 맞아 건강한 모습으로 노익장을 뽐내고 있는 배우 이순재씨의 음식 이야기를 만나보았습니다.

때로는 웃음을 터뜨리게 하고 때로는 눈물을 쏟게 하며 때로는 한숨과 그리움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창조적인 배우 이순재 씨. 야한 것을 좋아하는 노인이 되기도 하고, 왕이 되기도 하고, 치매에 걸린 노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배우 이순재 씨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그 인물에 매료되어 순식간에 극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가 펼치는 연기는 소름 끼치도록 아름답다가도 소름 끼치도록 무섭기도 하다.

이순재의 떡국

연기란 창조적인 작업이라고 말하는 배우 이순재 씨. 그는 과연 어떤 음식을 즐겨할까? 평소에 이순재 씨는 면 음식을 무엇보다도 좋아한다고 한다. 여름철에는 일주일에 3~4번 이상은 냉면을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고 할 정도. 이처럼 면 음식을 매우 좋아하는 그 이지만 새해 음식으로 떡국을 먹지 않으면 서운하다고 말하며 떡국을 챙긴다. 하긴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란 사람치고 새해 떡국을 먹지 않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떡국은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과 일본 등 쌀을 주식으로 하는 동양 삼국의 주요 세찬(歲饌) 가운데 하나이다. 세시음식이라고도 불리는 세찬은 새해를 맞이하며 먹는 음식으로 일본에서는 찹쌀떡으로 만든 떡국을 먹고 중국에서는 시루떡을 넣은 ‘탕년고(蕩年?)’라는 떡국을 먹는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의 떡국은 그냥 하나의 음식일 뿐 우리나라처럼 ‘한 살 더 먹는다’라는 의미는 담고 있지 않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새해 첫날 음식으로 떡국을 먹고 그것을 통해 한 살 더 먹는 의미를 찾는 것은 한 해를 넘기며 부족한 영양분을 떡국을 통해 보충했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떡국에는 흑돼지 고기나 꿩고기는 말할 것도 없이 그 귀한 쇠고기까지 넣어 부족한 영양분을 보충했던 것이다. 『동국세시기』 『영양세시기』 『경도잡지』 등의 조선 풍습을 설명한 책에서는 떡국을 통해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떡국의 의미를 잘 설명하고 있다.

영조대왕의 탕평채

배우 이순재 씨가 영조대왕으로 나온 드라마 <이산>은 장장 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사람들을 TV 앞에 묶어놓았다. 이순재 씨가 창조적인 배우였던 것처럼 영조대왕 역시 창조적인 정치인이었다. 물론 영조대왕은 드라마에서 나온 것처럼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이는 끔직한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러나 당시는 남인과 북인, 소론과 노론 등 당쟁이 끊이지 않던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서 영조도 어쩔 수 없는 피해자였던 셈이다. 영조대왕으로 나온 이순재가 나중에는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고 죽기 직전 손자인 이산에게 왕위를 계승시켜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그래서 눈물겹기까지 하다.

드라마에서는 별로 나타나지 않았으나 영조의 창조성은 음식 하나에까지 이를 정도로세심한 면이 있었다. 영조는 아들까지 죽인 당쟁을 바로 잡으려고 당파를 고루 등용하는 탕평책을 실시하며 새로운 음식을 하나 만들어 신하들에게 대접한다. 탕평채가 바로 그것. 서경(書經)의 ‘왕도탕탕 왕도평평(王道蕩蕩 王道平平)’에서 나온 말로 말 그대로 '어느 편도 들지 않고, 일을 공평하게 처리한다'는 탕평책처럼, 탕평채 역시 묵이 주재료로 사용되지만 고기와 미나리를 비롯한 각종 야채들이 어울려서야 비로소 제 맛을 낼 수 있다. 음식 하나로 당쟁을 없애고 더 강하고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애썼던 영조대왕. 그의 탕평채를 오늘날 시끄러운 여의도 국회로 보내주는 건 어떨까.

취재 및 기사 작성 : 자유기고가 홍희진
				자료제공 및 감수 : 가톨릭의과대학 성가병원 영양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