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잘나가던 의사 겸 교수가 쪽방촌으로 간이유는?
설 특집.마음 따뜻한 사람들이 전하는 이야기...
(주간조선/글/사진/조동진 기자/2012.01.19)
의대교수.대학병원 과장직 던지고 2009년 쪽방촌 무료병원으로...
요셉병원 신완식박사(61) 이야기
불과 30여m를 걸어가면 ‘이곳이 서울일까’란 생각이
집과 집을 양철지붕으로 서로 이어 붙인 쪽방들.
어른 두세 명이 나란히 서기만 해도 꽉 차는 좁디좁은 골목.
그 골목 어디쯤에서 시작된 건지 알수조차 없을 만큼
동네 전체를 휘감고 있는 퀴퀴한 냄새까지.
세상이 숨찰 만큼 빠르고 많이 변했다고 하는데
이곳은 거꾸로 시간을 30~40년쯤 뒤로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432번지 쪽방촌 모습이다.
이곳 영등포 쪽방촌 골목 한가운데 붉은 벽돌로 지어진
오래된 3층 건물의 요셉의원이 있다.
‘영등포 슈바이처’ 신완식(61) 박사다.
요셉병원은 1987년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로 불리던
고(故) 선우경식 박사가 ‘세상 가장 낮은 곳의
선우경식 박사가 2008년 갑자기 세상을 떠난 후,
그와 함께 사라질 뻔했던 이곳을 지키겠다며
2년 전만 해도 신 박사는 가톨릭의대 교수이자
이곳에선 늘 부끄러워진다.
그가 2009년 2월, 정년까지 6년이나 남아 있던
교수직을 내던지고 단 한푼의 보수조차 받지 못하는
요셉의원으로 옮겨 왔다.
그리고 지금 치료비 한푼 낼수 없는 노숙자와
1월 6일, 2012년의 첫 금요일에 찾은 요셉의원 2층.
진료실에서 만난 신완식 박사의 얼굴은 세상
그는 “이곳에서 가슴으로 웃는 법을 알았고,
세상에 감사할줄 아는 삶을 찾았다”고 했다.
“제가 이곳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입니다.
대학병원에서 의사로, 또 교수로 부족한것 없이
나만을 생각하며 살때는 좀처럼 꺼내지 않았던 말이지요.
제가 진료에만 전념할수 있도록 저보다 일찍 나와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묵묵히 청소를 해 주시는 분들..
술 취하고, 더러운 행색으로 밀려드는 환자들을
마치 자기 몸을 씻어내듯 닦아주면서도 단 한번 ‘힘들다’는 말을
그분들을 마주하면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란 말이
저절로 나오게 되더군요. 이분들뿐 아니지요.
차가운 우리 사회로부터 상처받고 쓰러졌던 분들이
다시 세상 속으로 돌아가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일때면
하루에도 수십번 ‘감사하다’는 말을 하게 되더군요.
그분들을 통해 오히려 제가 사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고 있는 거지요.”
쪽방촌 요셉 의원의 천사들 요셉의원에서 그는
너무나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일 뿐이라고 했다.
신 박사가 “이곳에서 만나는 천사들로 인해
“요셉의원에 종종 들러 목욕봉사를 해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얼마 전 그분이 병원에 오신날 하반신을 못쓰는
행려 환자가 실려 왔지요.
얼마나 안 씻었는지 몸 전체에서 심한 악취가 났어요.
치료를 위해 발과 항문을 반드시 씻겨야 했는데
그때 그 봉사자 분께서 조용히 행려 환자의 옷을
그리곤 그 발에 입을 맞추셨지요.
그 순간 봉사자 분의 표정에선
더 이상 악취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후 발과 항문 주변까지 깨끗이 씻겨 주셨지요.
그는 “불과 30여분쯤이었다”며 지금껏 자신의 기억이
“‘천사가 살아있다면
그러지 못했던 제 자신에게 ‘부끄럽다’란게
또 하루하루를 반성하며 사는 법을 그제야 알게 됐지요.
지금은 그분 같은 천사들과 같은 공간에서 숨 쉬며
신 박사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많은 것을 베풀고
대신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으로부터
감사함을 배울수 있어 고마울 뿐이라고 했다.
잘나가던 의사이자 교수였던 그가 영등포 쪽방촌의
무료 진료소에 둥지를 튼 이유는 무엇일까..
“2년 전이나 지금이나 많은 이들이
남겨 두고 왜 그만뒀냐’는게 가장 궁금한 모양입니다.
사실 딱히 답할수 있는 이유가 없어요.
저도 그 이유를 잘 모르니까요.”
그는 “막연히 ‘의사 신완식, 교수 신완식’으로만
인생을 마치고 싶지는 않았다”고 했다.
“의대 졸업과 레지던트 과정까지 마치고 전문의가 됐을때
‘이제 개업해서 돈 많이 벌어야지’ 하는 생각을 잠깐 했었습니다.
그때 아버지께서 ‘힘들게 공부한 만큼 세상과 사람들에게
도움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몇번이나 얘기하시더군요.
그 말에 개업을 접고 학교에 남아 교수까지 했던 겁니다.
근데 50줄에 접어들면서 그때 아버지가 했던 말이 또 생각나더군요.
물론 구체적으로 ‘뭘 해야 할까’를 그려 놓은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2008년 말부터 2009년 초 사이, 신 박사는
“그냥 ‘무언가를 하고 싶다’라는 막연한
어쩌면 막연한 공명심이나 정의감을 하늘에 계실 아버지나,
뭐 그렇게 의대와 병원에 사표를 냈던 겁니다.”
2009년 초 사표를 낸 그 길로 신 박사는 작별 인사를 위해
자신을 마냥 믿어주기만했던, 했던 가톨릭중앙의료원장
“사표 내고 처음 찾아뵌 분이 최영식 신부님이었지요.
자리에 앉자마자 ‘제가 사고를 쳤습니다’라고 고백했어요.
신부님께선 ‘행여 그런말 하지 마시라’며
농담인줄 아셨나 봐요.
자초지종을 말씀 드렸더니 ‘생각했던 것보다
그리곤 ‘이제 뭐하시게요..?’라고 물으시기에
‘아직 계획이 없어요’라고 솔직히 말씀 드렸어요.
그러자 ‘전부터 상의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며
2008년 돌아가신 선우경식 박사님과 요셉의원
입으로 꺼내진 않으셨지만 신부님 눈이
‘신 박사님 그곳에 둥지를 터주실 수 있으신지요’
라고 계속 말씀하시는 걸 알았어요.
사실 제가 어른들 말씀 참 잘 듣습니다.(하하하)
고민이고 뭐고, ‘아 왜 그런 자리 이제껏 얘기 안 했냐’고 말한 후,
다음날부터 요셉의원으로 출근하기 시작한 겁니다. (하하하)”
출처 : 따뜻한 봄 양지녁
글쓴이 : 봄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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