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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간 총성없는 전쟁…평창 ‘11년 정성’ 통했다

어울령 2011. 7. 7. 09:00

 

 

7일간 총성없는 전쟁…평창 ‘11년 정성’ 통했다

[한겨레] 평창은 "주민90% 열망" 호소


마지막 PT '감동의 정점' 찍어

첫 유치 신청 이후 11년 만의 성공. 겨울올림픽을 품에 안기까지 평창의 산고는 컸다.

 

특히 7월1일(한국시각) 유치단 출발부터 123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마감까지 유치 전선은 숨막히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 기대

평창유치위 관계자 모두는 '더반은 약속의 땅, 행운의 땅'이라고 생각하고 싶어했다.

 

18시간의 비행 끝에 1일 전세기는 어두컴컴한 더반의 킹샤카 국제공항에 내렸다.

 

수속을 밟고 빠져나온 평창유치위 대표단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과 함께 기대감이 감돌았다.

 

유치위 관계자는 "더반은 왠지 우리에겐 느낌이 좋은 땅이다.

 

37년 전 홍수환 선수의 감동과 지난해 월드컵 원정 첫 16강의 환희가 있던 곳"이라며 인연을 강조했다.

 

그러나 '전투'는 곧바로 시작됐다.

 

하도봉 유치위 사무총장은 2일 아침 정례 기자 브리핑에서 "총성 없는 전쟁터"라는 표현으로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조양호 유치위원장도 "마지막 2시간 전까지 최대한 겸손한 자세로 최선을 다해야만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분위기는 긴장 속으로 빠져들었다.

■ 긴장

라이벌 뮌헨은 막판까지 평창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독일 축구의 영웅 프란츠 베켄바워(66)마저 더반 현지에 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독일의 프레젠테이션에서 '깜짝쇼'를 펼치기 위한 카드였다.

 

뮌헨은 평창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신경전도 불사했다.

 

뮌헨 유치위는 내외신 기자회견 자리에서, "한국 기자 30여명이 고의적으로 기자석을 모두 점령해 다른 외신 기자들이 제대로 취재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들은 아이오시에 공식 항의문을 보냈다.

 

또 "평창과 뮌헨의 2파전 양상인데 뮌헨이 내세우는 강점은 무엇이냐"는 한국 기자의 질문에,

 

"안시를 제쳐두고 평창과 뮌헨 2파전으로 몰고 간 것은 투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발끈했다.

뮌헨은 더반 해변에 스키 리프트를 운영하는 등 독특한 시선끌기 아이디어를 냈다.

 

4년 전 과테말라 총회 당시 초대형 수송기 9대에 자재를 싣고 와 '적도의 나라'에 아이스링크를 만들었던 러시아 소치의 깜짝쇼를 연상시켰다.

 

대대적인 물량 공세에 평창도 바짝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 열정

평창은 뮌헨의 다양한 신경전에 의연하게 대처했다.

 

평창의 기자회견 때 한 외국 기자가 "평창은 깜짝 놀랄 만한 뉴스가 없느냐"고 물었다.

 

일종의 곁가지 질문이었지만 대답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답변에 나선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정직하게 "없다"고 말한 뒤,

 

"우리는 프레젠테이션에서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의 당위성과 필연성을 차분하고 성실하게 잘 전달하면 될 뿐"이라고 했다.

 

대신 한국민들의 겨울올림픽 유치 열망을 소개했다.

 

조양호 유치위원장은 "전국민과 평창 주민의 90% 이상이 겨울올림픽을 희망한다.

 

어느 경쟁 도시보다도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뮌헨은 70%, 안시는 80% 주민 지지에 그쳤다.

■ 환희

2011년 7월6일. 마침내 평창 심판의 날이 밝았다.

 

아이오시 총회에서 평창은 뮌헨, 안시에 이어 마지막으로 프레젠테이션에 나섰다.

 

모두가 열과 혼을 다해 평창 유치의 당위성을 쏟아부었다.

 

조양호 유치위원장은 "후세에게 새로운 기회와 잠재력을 전할 수 있는 올림픽 운동에 매우 중요한 순간"이라고 강조했다.

 

김진선 평창 특임대사는 "두 번의 실패가 새로운 도전의 바탕이 됐고 이번에는 반드시 꿈이 실현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피겨 여왕' 김연아는 "10년 전 서울의 한 아이스링크에서 올림픽 출전의 꿈을 꾸는 소녀였다"며 "이제 내 고향 한국에서 겨울올림픽이 열리는 새로운 꿈이 더반에서 실현되길 바란다"고 했다.

 

아이오시 위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프레젠테이션. 그것은 행운이었다.

 

아이오시 위원들의 감동은 그대로 표로 연결됐다. 12년 묵은 한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더반/김동훈 기자 ca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