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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생애 최악의 순간'...대책 없는 실업팀 해체 논란

어울령 2010. 12. 6. 09:00

 

'우리 생애 최악의 순간'…대책 없는 실업팀 해체 논란


【전주=뉴시스】권철암 기자 

 

"'우생순(우리생애 최고의 순간)'이요.

 

그런 것 다 필요 없습니다.

 

그 순간 잠깐이에요.

 

우리에겐 운동할 수 있고, 밥 먹고 살 수 있는 현실적 지원과 관심이 절실합니다"

최근 전북 2개 자치단체에서 총 3개의 육성팀을 해체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비인기 종목에 대한 실업팀 육성 방안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이번에 팀 해체 입장이 나온 곳은

 

전북 정읍시청의 핸드볼과 검도팀,

 

완주군청의 인라인롤러팀 등 3개팀.

 

이 가운데 정읍시청의 핸드볼과 검도팀은 정식으로 해체 통보를 받았고, 인라인롤러팀은 구두 통보를 받았다.

아직 공식 해체 통보가 전달되지 않은 완주군청 인라인롤러팀을 제외하고,

 

정읍시청에서 활동하고 있던 20명의 선수와 지도자는 하루아침에 머물 곳 없는 처량한 신세가 됐다.

더구나 내년부터 정읍시청 핸드볼팀에서 선수 생활을 하기로 하고,

 

최근 동계 훈련에 여념이 없는 이 지역 출신 여고생 5명은 첫 직장의 해체 소식이 아직도 믿겨지지 않는다.

이 여고생들은 선수 스카우트 시즌도 모두 끝난 상태라 다른 팀 입단도 어려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3개팀 해체될 만큼 형편없었는가?

이번에 해체 통보를 공식적으로 받은 정읍시청 핸드볼과 검도팀은

 

전국체전을 비롯한 유수의 대회에서 많은 성과를 올렸다.

 

실업팀을 평가하는 척도가 전국체육대회라는 점을 감안해 두 팀을 전국체전 성적으로 평가해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3개팀 모두다 최선의 노력은 다했겠지만 그 결과는 모두 다르다.

핸드볼팀과 검도팀은 올해 전국체전에서 각각 208점과 243점을 획득, 7년 만에 종합 9위를 차지한 전북에 큰 힘을 보탰다.

핸드볼팀의 점수 획득은 2008년 창단 후 3년만이다.

 

하지만 검도팀은 최근 10여년 간 전국체전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해 여론의 뭇매를 맞다가

 

올해 체전에서 1회전을 통과하며 점수를 획득하는데 성공했다.

완주군청 인라인롤러팀은 최근 3년간 금 2, 은 2, 동 2개 등 총 6개의 메달에 1100여점의 점수를 획득,

 

전북의 체전 성적에 적지 않은 힘이 됐다.

◇해체 명분은 무엇인가?

전북지역의 엘리트 체육 실업팀은 총 36개.

 

이 가운데 기업체에서 육성하고 있는 팀은 4개팀이 전부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도청과 도체육회에서 각각 5개팀을 떠맡아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나머지 22개팀은 무주군과 진안군을 제외한 12개 시·군에서 육성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지역세가 열악한 무주와 진안도 최근에는 기업체 방문 등을 통해 팀 창단에 주력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 팀의 공식 해체 통보를 한 정읍시의 명분은 재정상 어려움이다.

 

해체를 구두로 밝힌 완주군도 재정 압박이라는 이유를 내세웠다.

이들 지자체는 팀 운영 초기와 달리 도비 지원이 10% 미만으로 줄어들면서 재정 부담이 가중되고 있고,

 

이 때문에 팀 운영에 필요한 예산을 거의 떠맡고 있는 실정이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실례로 정읍시가 연간 부담하고 있는 실업팀 운영 경비는 14억원 가량.

 

하지만 지난해 지원된 도비는 7400만원에 불과하다.

 

사실상 실업팀 운영을 떠안고 있는 이유로 인해 정읍시는 운영에 난색을 표하고 있는 것이다.

 

실업팀 해체 문제를 지자체에만 돌릴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북도 역시 할 말이 없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실업팀을 기업체 등에서 운영하지 않거나 새로 창단되는 팀을

 

도청이나 체육회 소속으로 떠안다보니 일선 시·군에 지원해줘야 할 지원금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

 

운영해야 할 실업팀은 늘고 예산은 답보 상태에 있다 보니 지자체에 부담을 안겨줄 수밖에 없는 입장인 것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살려야지" 실업팀 존치의 이유는?

최근 막을 내린 광저우 아시아 경기대회에서 전북 출신 선수들은 금 8, 은 7, 동 10개를 획득하며,

 

대한민국의 종합 2위 성적에 큰 역할을 했다.

또 전북 출신 선수들의 선전의 밑바탕에는 핸드볼과 인라인롤러팀 같은 실업팀,

 

그리고 그 안에서 묵묵히 땀을 흘려온 선수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재정상 어려움을 감안하고라도 실업팀이 존치돼야 할 첫 번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정읍시내에서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연계된 여자 핸드볼팀이 미래의 국가대표를 육성하고 있다.

 

완주의 인라인롤러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탄탄한 체계를 갖추고 있다.

 

우수 선수를 육성하고, 미래의 올림픽,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할 어린 선수들의 진로 확보를 위해서도

 

실업팀은 반드시 유지돼야 한다는 것이 체육계의 중론이다.

5명의 정읍여고 핸드볼 선수들.

 

이번 실업팀 해체 통보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이다.

 

정읍시청에서 내년부터 선수로 활동하기로 하고,

 

시청에서 언니들과 함께 훈련을 하고 있던 선수들은 지금 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 어린 양과 같은 모습이다.

 

누가 이들의 미래와 꿈을 빼앗았는가?

◇'우리 팀 정말 해체되나, 대책 논의는?'

지난 3일 오후 전북체육회관에서는 이번 사태의 핵심인 핸드볼과 검도팀 관계자들이 대책을 논의했다.

 

하지만 논의 자체가 실망적이었다.

 

역발상으로 이 부분에서 지자체가 가지고 있는 힘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이날 대책 회의에서 핸드볼과 검도팀은 2개팀의 존치가 어렵다면 1개팀이라도 살아야 하니

 

상대팀이 양보하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검도는 "최근 10여년 간 큰 성적을 내지 못했지만, 20여년 간 활동해왔다"는 점을 강조했고,

 

핸드볼은 "역사는 짧지만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고,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체계적인 연계를 하고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결국 해결책은 제시되지 않았고,

 

도체육회는 정읍시를 찾아가 현실을 설명하며 1개팀이라도 운영해달라고 하소연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실업팀 존치, 선수 육성 해법은 없는가?

실업팀 존치와 선수 육성의 해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기업의 투자와 지자체의 적극적 관심이다.

 

하지만 수도권 등에 비해 거의 모든 면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전북에서

 

이같은 투자와 관심을 바라는 것은 사실상 무리다.

이 때문에 지자체와 해당 지역의 대기업이 대응 투자를 통해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실업팀을 육성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하지만 경제 활성화를 위해 갖가지 지원책을 제시해도 지방으로 이전하지 않는 기업에게

 

스포츠 투자는 언감생심(焉敢生心) 그 자체다.

이같은 문제들로 인해 우선 적극적으로 훈련에 임하고,

 

지역의 초·중·고·대학 등 연계 체계가 갖춰진 종목의 경우에는

 

지자체가 어려움을 감수하고라도 지원을 해줘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당장 어렵다고 해서 수년 수십년 간 이어온 전통의 연결고리를 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수년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음에도

 

지역사회의 이해관계에 의해 팀을 존속시키는 일은 더욱 없어야 한다.

 

부실한 팀에 지원할 여력이 있다면 더 열심히 뛸 수 있는 선수들에게 살 길을 열어줘야 하기 때문.

장기적으로는 실업팀 활성화 등을 위한 기금을 조성해

 

체육인들의 사기진작과 탄탄한 지원 시스템도 갖춰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기업이 부족하고 지역세도 열악한 전북과 같은 지역에서는 지자체가 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지금 전북에서는 '우생순' 같은 영화로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이 아닌,

 

현실의 밥줄을 걱정하며 '우리 생애 최악의 순간'을 겪고 있는 선수들이 간절한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cheol@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