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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을 넘긴 내 나이쯤 되면 친구 중 누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말에도 일단 가슴이 철렁하고 걱정부터 앞서게 된다. 그만큼 우리 나이의 질병은 한번 걸리면 잘 낫지도 않고, 병원에 입원할 정도라면 일단은 큰 탈이 아닐까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60대 이상에서는 암이나 뇌혈관질환, 그리고 심장병 같은 난치성 질병이 많고 또 실제로 이 나이 이후에 죽는 사람들을 보면 열 명 중 일곱 명 정도는 이런 병들로 인한 것이다. 말하자면 어려서 걸리는 병은 새로 구입한 차에 생기는 잔 고장 같은 것이라면 나이가 들어서 얻게 되는 병은 고물 자동차에 생기는, 그래서 폐차까지도 생각해야 하는 아주 심각한 고장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요즘은 병원에 입원하는 나이 든 사람들을 병문안 하는 일이 결코 만만한 게 아니다. 특히 한참 진행이 된 암에 걸려 죽음을 앞둔 사람을 방문하는 일이 그러한데, 잠시 병상에 누웠다가 회복되어 퇴원하는 환자를 문병할 때처럼 부담 없는 마음상태로는 도저히 이들을 방문할 수가 없다.
이런 환자들 앞에서는 무엇보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무슨 말로 병문안을 해야 할지 난감하다. 특히 환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를 위로한답시고 우스갯소리를 한다든지, 환자를 동정한답시고 우울한 표정을 지어 슬프고 속상한 마음을 드러내 보이는 일 등이 대개는 환자에게 더 큰 슬픔과 마음의 고통만을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신체적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그것이 하느님의 뜻일지도 모른다거나 아무리 아파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참으라는 등의 말로 위로하는 일은 환자에게 사실 고문 같은 일이 될 수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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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 미국의 유대교 랍비 중 『왜 착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라는 책을 써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해롤드 큐스너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사람들의 불행을 하느님의 섭리로 보는 신앙은 절대로 잘못된 것임을 강조한다. 그도 자기 교회 신자들 가운데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불치의 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을 방문할 때마다 전에는 자신도 하느님께서 특별한 뜻이 있어서 그런 고통을 주신 것일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해왔음을 고백한다.
그가 어느 날 자신의 세 살 난 아들이 어린 나이에 일찍 늙어버리는 ‘조로증(早老症)’에 걸린 사실을 발견하고, 그 아들이 열네 살 나이에 죽을 때까지 11년간 온갖 고통을 경험한다. 그는 이 엄청난 고통을 경험하면서 그 동안 불치의 병으로 고통 받는 많은 환자들에게 위로랍시고 한 자신의 말들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잘못된 것이었는지를 깨닫는다.
이런 그의 경험을 글로 정리한 이 책에서 그는 이 세상 누구에게나 불행은 올 수 있다는 것과, 하느님도 실상은 그 일을 어쩌지 못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이런 불행에 대해서 하느님만큼 속상해 하면서 이들이 하루 빨리 그 불행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며 걱정하는 분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아주 오래 전 내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우연히 호스피스 워크숍에 관한 교내 광고를 보고 흥미를 느껴 참여했었다. 이를 계기로 죽음을 앞둔 말기 환자들의 심리상태를 연구해서 발표한 큐블러·로스의 책이다. 또한 암 환자 치료 경험을 책으로 엮은 암 전문 의사들의 책들도 여러 권 읽어보긴 했지만 아직도 나는 이들 죽음 직전의 환자들 앞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할 때가 많다. 조용히 환자의 손을 잡아 준다든지, 환자의 과거 훌륭했던 생활 에피소드를 가족과 함께 나눈다든지, 환자의 얘기를 비판 없이 호응해주며 경청해 준다든지, 또는 큐블러·로스가 말한 임종환자의 다섯 가지 심리적 단계, 즉 거부, 분논, 흥정, 우울 그리고 수용 단계에 따라 적절히 환자와 대화하는 등 지극히 교과서적인 태도를 몸에 익혀 행동해 보기도 하지만, 순간순간 명암이 엇갈리는 환자의 눈빛을 대하면 오직 내가 살아있는 것만도 죄스럽다는 느낌에 빠질 때가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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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환자 병문안은 이처럼 언제나 그리고 누구에게나 힘이 드는 일이다. 일정기간 호스피스 교육을 받고 오랫동안 임종환자들 곁에서 자원 봉사를 하는 사람들 얘기를 들어봐도 이런 어려움은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처럼 죽음을 목전에 둔 환자를 문병하는 일은 실상 병문안을 받는 환자보다 그 환자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더 큰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임종환자를 자주 방문하다보면 그 환자의 고통이나 죽음에 대해서 뿐 아니라 자신의 건강과 삶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고, 생전에 그 환자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따라서 죽음을 맞는 모습이 확연히 다른 것에서 더욱 더 현재의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을 많이 하게 된다.
우리 대학병원에는 의사가 된 후 평생을 암 환자만을 진료해온 교수 한 분이 있다. 그분은 한때는 자신의 환자가 완치되어 퇴원하는 경우보다 병상에서 임종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일이 대부분인 자신의 일이 싫어서 전공을 바꿀까도 생각했지만, 미국에서 임종환자를 전문으로 돌보는 호스피스 활동을 접하고 나서 오히려 자신의 일에 보람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또 자신의 암 환자 진료 경험을 몇 권의 책으로 펴냈는데 그 내용들이 모두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교훈서라고 할 수 있다. |
어느 책에선가 평생을 명예와 권력 그리고 부를 위해서 살았던 사람들의 마지막보다 가난하지만 남을 배려하며 가족들과 진정한 사랑을 나누며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죽음이 훨씬 더 아름답고 편안하더라는 얘기를 읽은 것이 오래 오래 가슴에 남는다. 명예나 권력 그리고 부, 그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그런 일에만 몰두하느라 진정으로 가족과 이웃을 돌보지 못한 삶의 방식이 문제라는 것이리라.
‘죽음을 가까이서 자주 경험하는 사람은 더욱 더 용기 있는 사람이 되고, 죽음을 자주 생각하는 사람은 더욱 더 지혜로워진다’는 말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임종을 앞둔 환자 병문안을 자주 하는 일은 외롭게 죽음을 기다리는 환자를 위로하는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이를 통해서 평소 자신의 건강을 좀 더 적극적으로 살피게 된다든지 남은 생을 더욱 더 뜻있게 살아야 하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하는 가치 있는 일이다. | | |
* 글을 쓰신 맹광호 교수님은 지난 40년간 가톨릭의과대학에서 후배 의료인을 양성하며 의과대학 학장과 보건대학원장 등을 역임한 바 있으며, 지난 2월 대학을 정년퇴임하시고도 의료계와 문학계에서 많은 활동을 하시고 있습니다. 그동안 틈틈이 문학적 소양이 돋보이는 많은 글들을 써왔으며 현재 한국의사수필가협회 회장직도 맡고 있습니다. 맹광호 교수님의 글을 통해 보다 따뜻하고 건강한 우리들의 삶을 그려 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