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야기

[스크랩] 아름다운 사나이 한주호

어울령 2010. 4. 1. 13:40

새벽 잠이 깨어 신문을 보다가 고귀한  생명을 바친 한주호 준위를 추모하는 감동적 기사를 보고  올립니다.그의 숭고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조난자들이 구조되고, 천안함의 비극의 원인이 철저히 밝혀지기를 기대하며 무엇보다 사나이 다운 사나이 한준호 준위의 명복을 빕니다.

[특별기고] 아름다운 사나이 한주호

  조선일보 : 입력 : 2010.03.31 22:35 / 수정 : 2010.03.31 22:35

           ▲ 문정희 시인

서해바다에 누운 한 준위여 당신의 마지막 잠수를 생각합니다
몸 던져 웅변한 생애의 숭엄하고 아름다운 가치를 생각합니다
당신이 영웅입니다…

후배들을 구하기 위해 검게 출렁이는 바다,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춥고 빠른 물살 속으로 거침없이 뛰어들었다가 순직한 노병(老兵)의 죽음이 하루 종일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는 어쩜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아들에게 말했고, 이제 입수(入水)를 중단하라는 아들의 걱정을 들었다. 그는 왜 무엇 때문에 그 차갑고 거친 바다에 운명을 걸었을까. 그의 최후가 천안함의 비극과 겹쳐진 것을 단순히 '추가 희생'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가 바다에 몸을 던져 웅변한 생애의 숭엄하고 아름다운 가치가 하루 종일 내 귀를 때리는 듯했다.

"정신이 용감한 사람은 홀로 싸우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고 말한 이는 마하트마 간디였던가. 한주호 준위. 그는 진정 용기있고 당당한 열정의 소유자만이 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마지막 잠수를 하였다. 그에게 그 잠수는 무엇이었고, 군인이란 신분은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그 다이빙의 순간, 그는 말이 아니라 몸으로 신념을 사는 참사람의 모습 그 자체였다. 천안함의 침몰 원인은 아직 미궁투성이여서 답답하고 숨이 막히지만, 그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피어난 한 눈부신 영혼이 지르는 함성만은 똑똑히 들었다.

공무도하(公無渡河)! 만류하는 아내의 손을 뿌리치고 강으로 뛰어든 저 고조선 시대 열정의 백수광부(白首狂夫)였을까. 흰 머리칼 강바람에 휘날리며 물속으로 뛰어든 신화 속의 아름다운 사나이를 자꾸 그와 겹치어 떠올려 보게도 된다. 그가 바다로 뛰어들어 간 이유를 어렴풋이 알 수도 있을 것 같다. 아까운 생명들이 구조를 기다리는 저 거친 바다는 군인인 그에게 자신의 안위를 거침없이 내던져 버려도 좋을 사명이요, 용기요, 꿈이 아니었을까.

한 준위는 18세에 입대하여 35년간 군복을 입은 뼛속까지 군인이었다고 한다. 수중폭파대(UDT)로 평생을 살아왔으니 위험이 있는 바다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던 셈이다. 그는 누구보다 목숨의 소중함과 두려움과 위험함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가족들의 기도와 눈물을 가슴 깊이 간직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그의 마지막 다이빙은 이름없는 영웅의 비상(飛翔)이었다. 아까운 생명들을 살리기 위해서 주저없이 위험 속으로 자신의 전부를 던져버린 그의 선택은 명리(名利)와 계산과 이기주의로 가득한 세상을 빤한 잇속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반성이요 질책이요 감동이었다.

그는 천안함 사고 소식을 듣고는 자원하여 현장으로 갔다. "내가 베테랑이니 내가 직접 들어가겠다"며 젊은 후배들 앞에서 단련된 정신으로 몸을 사리지 않고 현장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위기상황에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군함을 집어삼킨 그 바다에 그렇게 허술한 장비와 힘든 조건을 견디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아는 전문가였다. 그래서 그의 희생이 더 값진 것이다.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몸으로 보여준 사랑과 희생, 입으로 부르짖는 애국이 아니라 겸손과 실천으로 보여준 눈부신 영혼의 던짐이 애국이라는 말에 거룩한 무게를 더한다.

한 준위의 죽음은 깊은 바다 속 수압이 높아 호흡을 통해 몸속으로 들어간 질소기체가 체외(體外)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혈액 속에 녹게 된 것이 직접 원인이라고 한다. 그래서 허술한 주위 상황과 낡은 장비를 탓해보기도 하고, 해군의 열악한 현실을 탓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어떤 말로도 아까운 한 목숨을 다시 살려 놓지는 못할 것이다. 같은 희생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방책을 마련해야 한다.

고인을 가장 크게 사랑하고 위로하는 길은 무엇인가. 훈장이나 성대한 장례보다도 그가 그토록 간절히 살리려고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뛰어들었던 46명 실종자에 대한 소식일 것이다. 차가운 바다 밑에 있는 장병들을 하루빨리 다시 뭍으로 데려오는 것이리라. 그리고 천안함의 침몰부터 구조까지 전 과정을 하루 빨리 명백히 밝히는 것이리라. 실종자 가족에 대한 진심 어린 위로를 대한민국과 국민의 이름으로 보내는 것이리라. 모처럼 '참사람'을 보여주고 떠난 고인의 영면(永眠)을 기원하며 남은 가족에게 진심으로 따스한 위로를 드린다.

 

[사설] 대한민국 국민을 떳떳하게 만들어준 거룩한 희생

  • 입력 : 2010.03.31 22:46
 
해군 특수전여단 한주호 준위는 사진 속에서 이를 악문 채 성인봉함 갑판에 서 있었다. 한 준위의 잔뜩 찌푸린 눈과 이마는 사랑하는 후배들을 삼킨 서해 바닷속이 지금 얼마나 험악한지, 그 거친 바다 앞에서 그가 어떻게 스스로의 마음을 담금질하고 있는지를 함께 말하고 있었다.

지난 29일 외신기자 카메라에 잡힌 53세 노병(老兵)의 모습은 군인이 다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봉우리, 그 자체였다. "하루 잠수하면 이틀 쉬어야 한다"는 안전규정도 바다 밑 캄캄한 어둠에 갇혀 있는 후배들을 살려내려면 1분이 아쉽다는 그를 붙들지 못했다. 그리고 한 준위는 내리 나흘 잠수했다가 싸늘한 몸으로 떠오르고 말았다.

그가 꼭 물 속에 들어가야 할 상황도 아니었다. 지난 35년 수중폭파(UDT) 요원과 교관으로 뛰면서 쌓은 풍부한 경험과 지식으로 후배들을 배치하고 지휘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2년 뒤 전역을 앞두고 오는 9월 직업보도반에서 바깥세상으로 나설 채비를 시작하는 그에게 부대는 "이제 그만 쉬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조국과 해군을 위한 마지막 봉사"라며 잠수복을 입었다.

천안함이 동강나 가라앉은 45m 아래 바닷속은 우리가 숨쉬는 공기압의 다섯 배, 5기압이 넘어간다. 팽팽한 농구공을 넣으면 5분의 1로 쪼그라드는 압력이다. 거기서 10분만 작업해도 급격히 피로해지고 의식이 가물거린다. 무슨 임무로 바닷속에 내려와 있는지조차 잠깐씩 잊을 정도라고 한다. 수온도 체감온도 영하에 가까운 3.5도다. 머리에 찌릿찌릿한 충격이 오고, 입에 끼우는 호흡기가 얼어붙을 만큼 차갑다. 가뜩이나 흐린 서해 바닷물에 바닥까지 뻘밭이라 손목시계도 보이지 않도록 시야가 뿌옇다.

물살이 1노트, 시속 1.85㎞ 넘으면 잠수하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백령도 앞바다 조류(潮流)는 5.3노트로 치달리고 있다. 현장에 달려온 민간 구조대원들이 선체(船體) 근처도 못 가보고 도로 올라와 손을 내젓는 바다였다. 그러나 손주 볼 나이에도 한 준위는 물러서지 않았다. 급히 집을 떠나느라 얼굴도 못 본 아내가 두 차례 전화를 해도 "바쁘니까 내일 전화하겠다"며 끊었을 정도로 몰두했다.

그는 군 생활 평생 "내가 앞장서야 따라온다"고 믿었다. 작년 소말리아 해적을 물리치러 간 청해부대에도 가장 나이 많은 부대원으로 참가해 해적선까지 올라 적을 제압하는 기개를 떨쳤다. 아버지를 따라 육군 장교가 된 아들에게도 모범이 돼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이번 구출작전 중에 아들과 한 통화에서 "앞이 안 보여 답답하다. 물살이 너무 세다"고 하면서도 "어떻게든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한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 준위의 부인은 마른하늘 날벼락 같은 소식을 접하고도 몸가짐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머릿속에 험한 물살과 아버지의 나이가 자꾸만 겹쳐 "이제 그만두시라"고 했다던 장교 아들도 가슴 속에서 고여 넘치려는 슬픔과 아픔을 누르고 반듯하게 서서 추모객을 맞았다. 그런 모자(母子)를 보며 많은 국민이 군인 가족의 모습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한 준위가 살아온 35년 군(軍) 인생이 헛되지 않았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준위의 빈소엔 그동안 해군 당국을 많이 원망하던 실종자 가족들도 찾아와 "죄송하다"며 흐느꼈다. '한주호 준위, 국민은 당신의 거룩한 희생 앞에 거듭 머리를 조아리며, 우리 가슴 속에서 잠시 흔들렸던 군(軍)에 대한 미더움을 되찾게 해준 당신을 향한 고마움을 어찌 나타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출처 : 따뜻한 봄 양지녁
글쓴이 : 봄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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