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여름

'섬 속의 섬' 제주 비양도

어울령 2010. 9. 15. 09:00

 

'섬 속의 섬' 제주 비양도

한국일보 | 입력 2010.08.26 21:03 | 수정 2010.08.26 21:19 |


한걸음 물러서면 눈앞에 제주 파노라마
한바퀴 돌아보면 발아래 비양 파라다이스

보라보라, 몰디브, 뉴칼레도니아, 모리셔스….

낙원이라 꿈꾸는 열대의 유명 휴양지들이다. 이들이 그토록 꼭 한번 가보고 싶도록 매료시키는 이유의 첫번째는 바로 그 물색일 것이다. 찬란한 태양 아래 반짝이는 에메랄드빛 바닷물이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물빛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제주 비양도 앞바다를 이야기 하겠다. 협재와 금릉 해수욕장에서 비양도를 바라보고 섰을 때의 그 바다색은 굳이 앞서 나열한 열대 휴양지들이 부럽지 않다.

↑ 보말죽(왼쪽)과 소라물회(오른쪽)

↑ 비양도에선 한라산과 제주 본섬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 맹렬히 타올랐던 2010년 여름이 떠나려 한다. 여름이 칠해놓은 절정의 푸름이 비양도의 너른 풀밭과 바다에 짙게 물들어 있다.

협재, 금릉 해수욕장과 비양도 사이 바다 밑에는 고운 하얀 모래가 깔렸고 수심도 낮다. 투명한 제주의 바닷물을 통과한 빛이 희디 흰 모래밭을 튕겨내며 만들어내는 색깔이다. 그 고운 물색을 사철 풀어내고 있는 섬, 비양도로 향했다. 소설 < 어린왕자 > 에 나온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모양을 하고 있는 섬이다.

한림항 한 귀퉁이에 마련된 자그마한 도선대합실에서 배를 기다렸다. 제주를 찾는 이들은 많지만 비양도까지 찾아가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은 듯 대합실은 한산했다. 작은 여객선에 올라탄 지 10여분. 배는 연초록 바다 위를 스치듯 내달려 금세 섬에 닿았다.

좀체 끝나지 않는 여름 더위 때문에 섬 구경은 시작도 하기 전인데 땀이 솟구친다. 아침도 거르고 나선 길이라 우선 선착장 인근의 식당에 들어가 요깃거리를 청했다. 소라물회가 좋다는 얘기에 한 그릇 부탁했다. 시원한 바다를 담은 물회 한그릇으로 뱃속을 채우고 나니 그제서야 정신이 났다.

위에서 보면 가오리 모양인 비양도(飛揚島)는 글자 그대로 날아온 섬이다. '산이 바다 가운데서 솟았다. 고려 목종 2년(1002)에 산의 네 구멍이 터지고 붉은 물을 5일 동안이나 내뿜다가 그쳤다'는 < 신증동국여지승람 > 의 기록이 있다. 이대로라면 비양도는 기껏 1,000년이 조금 지난 섬이다. 하지만 섬에서 발견된 신석기 유적 등으로 볼 때 천년 전 화산 폭발로 섬이 만들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본디 섬이 있었고 그곳에서 다시 화산이 폭발해 지금의 모양이 됐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먼저 비양도의 정상인 비양봉을 오르기로 했다. 정겨운 마을 고샅을 벗어나니 오름 꼭대기로 향하는 나무 계단길이 보였다. 한 걸음 두 걸음 계단을 오를 때마다 시야도 함께 커졌다.

오름 능선은 짙푸른 억새로 가득했다.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깊어지면 흰 꽃을 피워내 사각사각 하늘 위로 제주의 바람을 노래할 억새들이다. 짙은 초록의 억새는 가지런히 해풍의 빗질을 받으며 시간을 기다렸다.

계단길이 끝나고 굼부리(분화구) 능선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해발 114m의 비양봉 정상에 섰다. 봉우리 맨 꼭대기에는 새하얀 등대가 서있다. 꺼칠한 표면의 허름한 등대다. 외로워 보이는 등대 옆에는 불을 밝힐 에너지를 댈 태양광 발전판이 설치돼 있다. 발전판을 좀 예쁘게 세워놨으면 좋았을 것을. 고독한 등대의 분위기를 흩뜨려 놓아 아쉽다.

등대를 등지고 한라산을 찾아 시선을 돌렸다. 제주 본섬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한가로이 제주를 감상하다 바다로 눈을 향했다. 비양봉 짙푸른 억새의 초록에서 풀어져 내린 걸까. 푸른빛을 한 모든 색들이 물에 풀린 듯 요동을 친다. 파랑과 초록이 그라데이션을 하며 물에 풀어지고 있다.

산에서 내려와 이번엔 섬을 한 바퀴 돌기로 했다. 마을 끄트머리 가게에 들러 하드 하나를 베어 물고는 다시 땡볕 속으로 걸어갈 힘을 얻었다. 가게 주인에게 물으니 섬에는 60여 채 집이 있지만 실제는 35가구 정도만 산다고 한다. 비양도는 물이 귀한 섬이다. 오래 전에는 빗물을 모아 식수로 사용했던 곳이다. 1965년에야 협재에서 섬까지 해저로 수도관이 연결됐다고 한다.

섬을 빙 둘러 해안길이 나있다. 커다란 코끼리를 닮은 멋들어진 갯바위를 만나고, 숭숭 뚫린 돌담 사이로 비양도의 푸른 하늘을 만날 수 있는 길이다. 아기를 업은 임신부가 남편을 기다리다 굶주렸다는 전설의'애기업은돌'을 지나면 펄낭이라는 커다란 염습지를 만난다. 바닷물이 현무암의 구멍을 뚫고 땅밑으로 스며들어와 형성된 곳이다.

산에도 오르고 섬을 한 바퀴 다 돌았는데도 오후에 나갈 배가 뜰 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남았다. 학생 6명만 다닌다는 초등학교 분교도 거닐고, 바닷가의 낚시꾼도 기웃거리며 느림의 미학을 만끽한다. 느리게 가는 여름을 느릿느릿, 그렇게 보낸다. 비양도(제주)=글ㆍ사진


여행수첩

제주공항에서 한림항까지는 자동차로 30분 가량 걸린다. 한림항과 비양도를 잇는 배는 오전 9시, 오후 3시(한림항 출발)에 있다. 15분 가량 소요. 어른 1,500원, 어린이 900원. 한림항 비양도행 도선 대합실 (064)796-7522

● 비양도 선착장 앞 호돌이식당이 소라물회와 보말죽으로 유명하다. 보말은 제주 바닷가의 돌을 뒤집어 잡는 고둥 종류로 일명 '고매기'라고도 불린다. 보말죽은 끓이는 데 40분 이상 걸리니 섬 트레킹을 나서기 전 예약하는 게 좋다. 보말죽 8,000원, 소라물회 1만원. (064)796-8475

● 제주 모슬포항에 자리한 항구식당은 자리돔 요리를 잘한다. 자리돔물회와 자리돔구이가 대표 메뉴다. 1인분 각 7,000원. (064)794-2254

● 제주공항의 JDC공항면세점에선 손님을 찾아 다니는 항공사 직원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모처럼의 면세 쇼핑에 몰입하느라 탑승 시간을 잊어버린 분들이 많기 때문. JDC공항면세점은 이스타항공 티켓을 제시하면 5% 할인해준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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