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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배우들이 극중 역할을 충분히 소화해내기 위해 때때로 살을 찌우고 빼기도 합니다. 그러나 20kg을 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도 비만이 아닌 정상적인 체중에서는 말이지요.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독특한 지휘자 역할을 했던 그가 이번에는 루게릭 환자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20kg을 감량했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경이로워 했습니다. 어찌 보면 정작 루게릭 병이 어떤 병인지 보다는 그의 살빼기에 더 관심이 몰린 것 같았습니다.
김명민은 영화에서 루게릭병에 걸린 종우 역을 맡았습니다. 루게릭병은 근육 위축가쪽경화증(ALS) 또는 운동신경세포병이라 불리는 병의 한 유형입니다. ALS는 신경계통 중에 근육을 지배하는 뇌와 척수에 위치한 운동신경세포가 파괴되는 질환인데, 그 중 루게릭병은 상위 운동신경세포와 하위 운동신경 세포가 모두 파괴되는 유형을 말합니다. 미국의 유명 야구선수였던 루게릭 씨가 이 병에 걸리면서 흔히들 루게릭병이라고 부르게 되었죠.
이 질환은 미국과 유럽의 경우 일년 간 십만명 중 1.5~2.5명 정도에게서 발병 되고, 나이가 많을수록 발생율은 증가합니다. 증상은 침범되는 부위에 따라 달라지는데, 손이나 다리에 마비가 오는 것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가장 흔합 니다. 일부의 경우 씹고 삼키고 말하는 근육에 먼저 침범하기도 합니다. 일단 증상이 시작되었으면 마비는 점점 심해지고 다른 부위로 퍼져나가게 됩니다.
이 병이 잔인한 이유는 운동기능이 소실되어 마비가 점차 심해져가도 감각과 인지기능은 정상적으로 유지된다는 데에 있습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라도 환자는 모든 감정을 다 느끼기 때문에 더 힘들 수밖에 없 습니다. 신경과 질환 중 불치의 병이라고 할 수 있는 여러 질환들이 있지만, 특히 루게릭병은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게 되는 신체 안에 영혼이 스 스로의 완전히 감금되어버리는 듯한 큰 고통을 안게 되는 가장 슬픈 질환 이라고 생각됩니다.
영화 속 종우도 하늘을 원망하고 싶은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종우를 돌봐주던 유일한 혈육인 어머니가 저 세상으로 떠나고 혼자 남겨지게 되는 것이지요. 청천벽력(靑天霹靂), 마른하늘에서 날벼락이 떨어지는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사랑은 시작 됩니다. 장례식장을 쓸쓸히 지키는 종우 곁에 새로운 사랑이 다가온 것이지요. 그녀의 이름은 바로 지수(하지원 분). 장례지도사인 지수는 어렸을 때 한 동네에 살던 종우의 아픔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둘은 사랑을 키우게 됩니다. 그때까지 종우는 제법 의젓하게 병을 받아들입니다. 반드시 치료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도 여전합니다.
종우의 이런 바람은 실현될 수 있을까요? 안타깝지만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마침내 종우에게는 입이 굳어 말마저 마음껏 할 수 없는 언어장애가 나타납니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지수에게 종우는 제발 나를 죽여달라고 애원합니다. 자신의 아픔도, 또 그런 아픔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지켜보게 하는 것도 괴로웠으니까요.
영화에서 보았던 그 아픔이 안타깝지만 그것은 현실의 아픔이기도 합니다. 루게릭병은 10% 정도만이 유전적 원인에 의해 발병하고 대부분은 특별한 원인 없이 발생합니다. 병을 일으키는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들이 있지만 아직까지는 정확히 알지는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아직 완치를 위한 치료 법도 없습니다. 그나마 현재 공인받은 약제는 병의 진행을 늦추는 정도일 뿐 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일부 다른 종류의 운동신경세포병에는 그 효과가 불 분명합니다.
부분적인 마비에서 시작된 병은 종국에는 말하는 근육, 씹는 근육까지 마비 되어 삼킬 수도 말할 수도 없게 되고, 숨 쉬는 근육까지 마비되면 인위적으로 호흡을 해주는 기계를 달아야 생명을 이어갈 수 있게 됩니다. 증상이 발생하고 이렇게까지 진행하는 기간은 평균 2년에서 5년 정도 걸리지만, 환자에 따라서 더 빨리 올 수도 더 늦게 올 수도 있습니다.
튜브를 삽입해 바로 위로 음식을 공급하고 호흡연장기계를 사용하면서, 장 기간 누워있으면서 발생하는 폐렴, 요로감염, 욕창 등을 조심하면 생명은 연장할 수 있지만, 그러한 삶이 과연 환자나 그걸 지켜보게 되는 보호자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는 잘 생각해 볼 일입니다. 그래서 의료진은 그러한 상태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하고, 환자와 보호자의 동의를 받은 후에 호흡 연장 기계를 사용하게 됩니다.
종우와 지수의 애절한 사랑만큼 루게릭병은 고통과 슬픔을 담고 있는 병입니다. 본인과 주변의 노력만으로는 되돌이킬 수 없는 불가 항력적인 병의 무게에 환자도 보호자도 지쳐갈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은 슬프지만, 영화 <내 사랑 내곁에>는 분명 삶의 소중함과 사랑의 따뜻함을 우리에게 느낄 수 있게 해줍니다. 이런 마음이 루게릭 환자들을 응원하는 힘으로 전해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또한 아직은 불치명이지만 줄기세포에서부터 다양한 약제에 대해 서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므로 멀지 않은 미래에 이 병을 완치 할 수 있는 방법이 나오길 기대해 봅니다.